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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락방/속마음 구석

[상담일기] 오래된 나의 깊은 물: '아주 멀쩡한 사회인'의 전혀 멀쩡하지 않았던 속 얘기 [1]

by 홀로Hollo 2020. 2. 22.

 

 

 

 

 

#1. 나는 언제나 나에게 관심이 많았다

 

세상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관심이 많은 '나'
그런 '나'는 '나'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2004년. 고등학생이 되어서 원래 살던 시골을 떠나 근처의 중소도시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그때 처음 몸이 집에서 독립을 했고, 용돈을 받아 내 가계를 꾸리기 시작했다. 스스로 돈을 운용하게 되고 나서 샀던 첫 책이 프로스트의 정신분석학을 다룬 <정신분석에로의 초대>였다. 한창 '내가 누구인가' 고민을 깊이 하던 시절이었고, 서점에서 책을 구경하다 이끌리듯 사게 됐다.

 

대학 전공서 두께의, 알 수 없는 단어들이 가득한 그 책을 이해가 갈 때까지 몇 번이나 읽었다. 가장 크게 와 닿았던 것은 상담자도 본인의 감정을 풀어야 하고, 내담자에게 받은 부정적인 것들을 다시 해소해야 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슈퍼바이저와의 상담이 필요하다는 부분이었다. 미처 하지 못할 때는 자가 상담이라도 진행해서 본인의 감정을 내담자에게 전이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그 책을 읽고 나서 내 감정을 스스로 알고 인정하는 방법으로 솔직하게 일기 쓰기를 배우게 됐다. 그전까지는 일기를 쓰더라도 '누가 보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키워드로만 간단하게 또는, 그 당시의 나만 알아볼 수 있도록 적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 일기장인데도 나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일기장들만 남아 있었다.

 

내 마음을 제대로 알기 위해 스프링노트에 빽빽하고 솔직하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의 육하원칙에 따라 기분이 나쁘거나 우울한 이유를 가감없이 적었더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유치한 생각과 모난 마음들이 훤히 드러났다. 글로 적으니 아주 간단한 과정 같았지만 그렇게 쓰기까지가 쉽지 않았다. 육하원칙에 따라 생각을 먼저 하고 글로 옮기려니 그 생각 속의 내가 너무 찌질해보였다. 그래도 인정하고, 알려고 노력하고, 결국에는 쓰게 됐기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이 뭐가 문제고, 내가 왜 우울한지를 잘 알게 됐다고 생각했었다.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끼고, 나를 좋아하고, 내가 원하는걸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해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 상담을 받기로 결정했다

 - '아주 멀쩡한 사회인'의 전혀 멀쩡하지 않았던 속 얘기

 

나는 밝고 친절하고 착하고 상냥한, 좋은 사람이다.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었고, 착한 사람이고 싶었다.
어디에나 있는 아주 멀쩡한 사회인이다.
심지어 누군가에게는 상담을 진득히 해주는,
'걔가 상담치료를 받는다고?' 할 만한 사람.

 

 


 

최근, 상담을 조금 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이유

 

집에서도, 밖에서도 대부분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하는 쪽이었다. 어디에서나 들어주는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이라 항상 말할 곳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어쩌다 내 이야기를 꺼내게 되면 누구도 내가 해주는 만큼 진득하게 들어주지 않았고, 우울감이 올라왔을 때 마음껏 위로를 바랄 사람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평소에 티를 전혀 내지도 않았고, 사실 티 낼만한 우울이 없는 날이 훨씬 더 많으니 사회인의 인간관계에서 티 나지 않는 누군가의 깊은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당연했고. 물론 시기에 따라 누군가 있는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안전하고 든든한 지지대는 아니었다.

 

유일하게 내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고 안정감을 느끼는 건 지금의 남자친구였다. 내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힘껏 공감하고 아주 진지하게 위로할 줄 아는 유일하고 온전한 내 편. 요즘 알 수 없는 감정의 오르내림이 잦아져 남자친구와 만날 때 그런 감정을 토로한 적이 많았다. 둘 관계의 일일 때도 있었고, 그저 내 개인적인 감정의 내리막일 때도 있었고, 별 것 아니지만 짜증이 치밀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내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주고 가라앉을 때까지 천천히 기다려주는 게 도움이 많이 됐다. 그런 내 편이 나의 시도 때도 없는 감정 기복으로 인해 덩달아 감정의 기복을 겪는다는 걸 듣고 나서 상담을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언젠가 남자친구가 '나도 우울해'라고 말하는 걸 상상해봤을 때, 나는 남자친구가 내게 해 준 역할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울이라는 게 그랬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위로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나'는 내 마음까지 돌볼 줄 아는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타인의 감정을 우선하다가 내 감정을 살피지 못했던 것처럼, 내 이야기를 듣는 남자친구가 내 감정에 너무 공감해주느라 본인의 감정을 살피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남자친구는 아주 좋은 이해자이고, 온전한 나의 편인 걸 분명히 알고 있지만 100% 의지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나 대신 화를 낼 때 상대 대상 또는 본인에 대한 분노로 바뀌는 것을 종종 봤기 때문이다.

 

 

8년에 걸쳐 일어나던 변화, 가속화를 느끼다.

 

지금 상담을 꼭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꼭 남자친구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 삶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는 가족이고 많은 마음의 문제가 가족에서 시작된 만큼, 가장 큰 이유 또한 가족이었다. 가족들과 마음에 들지 않는 내용의 대화가 오가면 톡 톡 쏘면서 대화를 하는 내가 느껴졌다. 듣는 사람이 무시당한다고 느끼거나, 자존심이 상하거나, 기분이 나쁠 수 있는 말투를 아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빠와 엄마에게. 나를 생각해서 하는 짜증 섞인 잔소리도 속마음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지만 먼저 나서서 알은체 하지 않기 시작했다. 짜증의 말투가 오면 짜증의 말투로 받아쳤다. 원래는 그렇게 해놓고도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에 사과를 하고 화해를 요청했겠지만 언제부턴가 그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해소되지 못한 불편함이 있으니 속으로는 화와 불안이 쌓여가고 있었던 것 같다. 가슴팍에 묵직하게 무거운 감정들이 쌓여 있었는데 억눌러도 밖으로 부정적인 기운이 계속 영향을 미치는 게 느껴졌다. 극도로 예민해지거나, 남자친구와의 저녁 데이트 전에 갑자기 피곤해지면서 우울해진다던가, 무기력증이 와서 이것저것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해 스스로에게 실망하곤 하는 일종의 우울증상이 지속적으로 조금씩 심해지고 있었다. *상담 선생님은 이런 현상을 스스로 느끼고 왔다는 게 힘이 있는 거라고 아주 잘했다고 해주셨는데, 그게 크게 위로가 됐다.

 

 

나만 괜찮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상담치료를 시작하기 3일 전 아빠와 동생 사이에 트러블이 있었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날 시골에 동생이 내 노트북을 두고 왔고, 누나꺼를 굳이 가져가더니 왜 두고 갔느냐는 것. 아빠는 큰 딸 일에 필요할 수도 있는 노트북이 시골에 남아있는 데다가 친척들한테 부탁해서 가져다줘야 하니 맘이 좋지 않았을 거고(사실 일주일쯤 안 가지고 있어도 괜찮았었다), 동생과의 통화에서 '어 그거 누나껀데'라는 한 마디에 폭발했다. 동생이 안 챙겨놓고 핑계를 댔다는 이유다. 아주 급발진하는 것처럼 불같이 화를 냈고, 그 시간 바로 우리 남매의 집으로 쳐들어왔다. 과거 트라우마처럼 남았던 사건이 떠오른 동생은 온몸을 떨며 울었다. 다 큰 남자 새끼가 그걸 털어내지 못하느냐고, 약해 빠졌다고 또 쏘아붙인다. 뭐 생각해보면 굳이 남자 새끼여서는 아니다. 나한테도 똑같은 말을 했었으니까. 그냥 나는 다 컸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흘렀기 때문에, 동생은 성별이 남자여서. 그냥 가지각색의 아빠 나름의 이유를 붙여 화풀이를 한 것뿐이다. '나'때문에 '사랑하는 내 새끼'가 상처 받았다는 사실을 절대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아빠는 그렇게 평생 모든 일을 회피하며 화를 냈고 우리는 너무 상처 받아 왔다. 나 혼자만의 상처였다면 혼자 곪아 터지고 또 그냥 그런대로 살아갔을 테지만 왠지 번뜩 내 새끼 살려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겪었던 지옥 같은 생채기가 더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가까운 곳으로 상담실을 몇 군데 살펴보고, 그중 마음이 확 끌리는 센터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았다.

 

 

그렇게 상담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싸움, 일에 대한 열등감, 그냥 감정의 기복, 연애관계 등 이유도 매번 다르게 점점 깊어지며 찾아오는 우울과 씨름해왔다.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 우울증 진단을 한 번 받았었다. 만성 우울증이라고까지 하기에는 아마 조금 애매한,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닌 그런.. 병보다는 아주 약간 덜 무거운 우울(상담을 시작하기 전까지 내가 느끼기에는).

 

이런 이야기를 적고 공유한다면 주변인 중 누가 어떻게 생각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오래된 관심으로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에 대한 인식이 아주 개방적인 편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정신병 걸린 사람만 가는 곳일 수 있으니. '멀쩡하다고 생각했던 내 주변 사람이 정신병자였구나'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언젠가 상담을 고민 할, '아주 멀쩡한 사회인'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 자씩 이 변화를 기록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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