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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락방/속마음 구석

[생각일기] 이런저런 생각

by 홀로Hollo 2020. 4. 24.

오늘은 아주 정제되지 않은 글을 써봐야겠다. 다들 그렇듯이 수정 없이 뭔가를 쓰려고 하니까 뭘 써야할까 고민되기도 하고, 글은 그냥 써지고 있는데 무슨 글이 완성될지 모르겠다.

엊그제부터는 몸이 아팠다. 두통이 일상을 방해할 만큼. 새 직장에 출근한 건 이제 겨우 24일 되었는데 두 시간 조퇴로 연차를 벌써 사용했다. 기안 문서함에 조퇴처리 한 문서만 있다. 아이 부끄러워. 아프다보니 더 그냥 아무거나 먹고 싶고 대충 때우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어제는 점심을 엄청 부실하게 먹었다. 살 빼고 싶은 김에 다시 식단을 시작하기로 했다. 점심은 사무실에서 사람들이랑 먹으니 어쩔 수 없더라도 아침 간단히, 저녁 간단히 정도. 퇴근길은 도보 30분이라서 웬만하면 걸어 다니는데 어제는 택시를 탔다. 돈 아깝다. 집에 들어가서 오이를 썰고, 달걀이랑 닭 가슴살을 삶았다. 누워서 버드박스를 봤다. 사무실 선생님이 추천해줬다. 보다가, 잠도 들었다가 30여 분이 지났다. 삶아지는 달걀이 냄비에 부딪히면서 탁탁탁 소리를 내는 게 들리는데 일어나기가 너무 귀찮았다. 영상부터 일시정지 시켜놓고 밍기적밍기적 일어나 가스불을 껐다. 통통한 닭 가슴살이 잘 익었다. 너무 뜨거우니까 찬 물을 켜고 살짝살짝 식혀가면서 한 입 거리로 찢었다. 달걀도 깨서 껍질을 깠다. 오이랑 닭 가슴살이랑 달걀이 한 접시에 가득 찼다. 아무리 다이어트 식단이라도 맛없으면 오래 못 먹는다. 허브솔트도 뿌리고 홀그레인도 작은 숟가락으로 펐다. 냠냠 먹었는데 정리되지 않은 집이 눈에 밟혔다. ‘아, 저것도 치우고 저것도 버려야 되는데. 움직이기 너무 싫다. 그냥 자야지.’ 집안일을 잘 배우고 자라지 못한 어른의 습관적 게으름과 미루기는 내 일상이 돼버렸다. 그래도 이제는 좀 움직이긴 해야지. 오늘 아침에 뚝딱뚝딱 썰어서 가져 온 오이가 입에서 오물오물 씹히고 있다. 한 조각 남았네.

어제 저녁은 집단상담일이었다. 상담을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빠졌다. 아프다는 게 핑계였을까. 아픈 건 사실이었는데 나도 모르는 방어기제가 어떻게 작용했을까. 나를 분석 받는 게 되게 재미있다. 내가 어떤 못난 사람이었는지 느끼는 게 부끄럽고 수치스러울 때도 있지만 내가 얼마나 사랑받아도 좋은 사람인지 느끼는 게 뿌듯하고 기쁘다. 나를 ‘본다’라는 게 이런 의미인 줄 몰랐다. 상처 받은 모든 사람들이 상담을 접했으면 좋겠다. 요즘 거의 상담 전도사다. 가끔 걱정한다. 신천지라고 오해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래서 모두한테 아무 때나 말하지는 않는다.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조심스럽게 내 상담 과정을 꺼낸다. 별거 아닐 수 없는 얘기들. 과거의 나와 우리 가족, 해결되지 않은 가족들과의 문제, 내 마음에 일어나는 변화들,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일어났던 일들, 일어난 일들, 그 과정 속에 느끼는 것들을 툭 툭 꺼내놓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스몰톡으로 충분히 해 오던 일들이지만 그 안에 늘 내 감정이 충분하지 않았던 걸 느낀다. 충분히 아파야했고, 충분히 슬퍼야했고, 충분히 외로웠어야 했는데 회피했던 과거들 속에 내가 없었던 걸 느끼고 본다. 뿌리가 너무 깊은 외로움과 우울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이제 겨우 뿌리 앞에 다가섰는데 다 느껴지지가 않는다. 선생님은 느껴지는 만큼만 느끼고 머무르라고 했다. 아직 힘이 없어. 그만큼만 느껴. 힘이 없다는 게 속상한데 힘이 생길까봐 무섭다. 어렸던 내가 채 느끼지 못했던 외로움을 이제와 다 느끼게 될까봐. 빨리 보고 빨리 느껴서 나은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조급한 욕심과 이 무력함들을 그만 느끼고 싶다는 두려움이 공존한다. 그런 두려움이 내 생각보다 크다는 걸 지금 글을 쓰면서 느끼고 있다. 내가 무서웠구나. 아마 감당해야 할까봐 무서워서 어제 상담을 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어디 구석에 박혀져 있었나보다. 빨리 가서 내가 깨달은 것들을 또 나누고, 같이 울고, 공감하고, 느끼고 싶다.

내일은 꼭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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