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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다락방/속마음 구석

[생각일기] 3일/일주일 상담, 상담, 상담

by 홀로Hollo 2020. 4. 13.

 

백수일 때는 2월부터 매주 화요일 4시 30분에 개인상담을 했고, 선생님은 개인상담을 하며 감정이 올라오거나 가라앉거나 괜찮다가 괜찮지 않음을 반복하는 나를 분석해주면서 집단상담 참여를 독려해주셨다. 3월에 시작한 이번 집단상담은 목요일 또는 토요일 과정으로 10회 프로그램에 참석하는 것이었고, 목요일 저녁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집단상담이 시작하기 바로 전 개인상담에서 '혹시 토요일까지 참석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 제안해주셨는데, 원래도 걱정은 없었지만 별도의 비용은 추가하지 않겠다는 말씀과 감정의 완급은 당연히 선생님께서 조절해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덥썩 물었다. 목, 토 집단상담 전체를 통틀어 1회기가 시작되는 토요일부터 참가하게 됐다.

 

원래 시간을 계획적으로 쓰지도 않을 뿐더러, 그러다보니 고정 일정이라는 걸 굉장히 싫어하고, 약속이 있으면 다가올수록 피하고 싶은 성향을 가진 사람인데 상담시간을 잡는다는 건 아주 별개의 일로 생각된다. 요즘 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코로나로 연기 된 것을 빼고는 4회 진행 된 집단을 모두 참가했고, 개인상담도 시간 계산에 실패한 개인 일정으로 1회 미뤄 진행한 것을 빼면 한 번도 그 시간을 피하지 않았다. 기특해라.

 

3월 14일부터 시작된 집단상담이 3월 26일부터 2주 간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을 위해 모두 연기되고, 개인상담도 31일 화요일에서 4월 4일 토요일로 미루게 되어 3월 24일부터 4월 3일까지 1주일 반을 통째 상담 없이 살았다. 아주 그립고 답답하고 말하고 싶은 게 쌓여가더라. 평소 일상에서 말이 많은 편도 아닌데 속마음을 풀어내다보니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공간과 들어주는 사람이 그리웠다. 물론 상담 받지 않는만큼 다시 그 일상에 익숙해져서 내 마음을 덜 들여다보기는 했었지만.

 

<첫 상담부터 이번 달 까지의 상담, 상담예정일정>

 

4월 6일 월요일 개인상담

미술치료, 해리현상? 비현실증?

지난주 월요일은 4일 개인상담 때 '이제 좀 준비가 됐어~?' 묻는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난 첫 상담이었다. 업무가 끝나고 부랴부랴 걸어서 30분 거리의 상담실에 도착했다. 냉큼 '네! 이제 더 열심히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대답했지만 사실은 조금 불안했다. 내가 나를 어디까지 꺼낼 수 있을까. 내가 정말 나를 볼 수 있을까? 감정과 마주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올라왔었다.

 

상담이 시작되고 처음으로 미술치료 기법을 통한 상담을 했다. 관계도 그리기. 아마 평소 같았으면 이 기법이 뭘 의미하는 건지 머리로 분석하고 답을 찾으려고 했을텐데 상담중이어서인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시간을 충분히 썼어도 됐겠지만 그냥 떠오르는 사람들을 빠르게 그림으로 그리고 싶어졌다. 떠오른 사람 중에도 또 그리고 싶은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도 있어서 대부분은 적었지만 몇은 적지 않았다. 다 그리고 나니 1~2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 있었는데 선생님은 '그리는데 1분 걸렸나? 2분?'이라고 되물었다. 그리는데 걸린 시간도 관계가 있나보다. 관계도 속 사람들은 참 좁더라. 남자친구, 전직장 동료, 동생, 동생의 가지에서 뻗어 나간 아빠와 아빠의 가지에서 다시 뻗은 엄마. 현직장 동료들, 돌아가신 친할머니, 외할머니, 외할머니에게서 뻗어 나간 넷째 이모. 어디서나 친한 사람 많다는 소리를 듣지만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실 별로 없다. 개인적으로 가장 당황스러웠던 부분은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남자친구와 전직장 동료, 동생의 거리감이 거의 비슷했다는 것. 아무도 아주 가깝게 붙어 있는 관계가 없이 혼자 덩그러니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슬프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있는 중. 그 관계도에 없는 나랑 가장 친구에게도 이야기를 했다. 서운했겠지? 너무 서운했던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면서 내 친구들과 관계의 거리를 잘 좁히고 잘 다지고 싶다.

 

그냥 엄마에게 물어봄

지난 일기에 적었지만 선생님과 이야기 했던 해리 현상(내 생각에는 비현실증). 그건 도무지 기억나는 충격이 없는 거다. 괜히 좀 그래서 엄마한테 물어 볼 수도 없고, 상담을 진행하면서 올라온 엄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 때문에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고. 혼자 기억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조각 맞추기를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오늘은 감정이 조금 풀리기도 했고, 엄마랑 통화 할 일도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다 '혹시 엄마, 나한테 그 때 무슨 일이 있었어? 선생님이 어린 애가 그런 걸 겪기는 쉽지 않고, 정신적으로 충격이 엄청 커야 일어나는 일이래. 엄마 아빠가 나한테 안 좋게 대했어? 나는 되게 옛날 기억도 있는데 그 때쯤은 기억이 전혀 안 나.' 하고 궁금한 만큼 물었더니 엄마의 유산과 시기가 맞는다고 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아주 거침없는 관종이었는데, 친가에서는 막내 아들의 첫 딸이어서 외가에서는 외할아버지가 제일 예뻐하는 셋째 딸의 첫 딸이어서 그리고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양가에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막내였기 때문에 사랑을 많이 받은 영향도 있다(고 생각했..다.....한다..... 이제 확신이 잘 없음ㅋㅋㅋㅋ). 타고난 성향이 관종이요, 다들 둥게둥게 해주니 아주 내 세상이었을 것임. 엄마가 유산을 했을 당시는 엄마 나이 스물 여덟이었고, 엄마 몸도 정신도 너무 안좋아서 양가 어른들 모두가 엄마를 챙기느라 내가 뒷전이었다고 한다. 지금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약 2년 간. 삼십대의 아빠도 철이 없던 걸로 기억하는데 스물 여덟 아빠는 더 아주 철이 없었겠지. 엄마 말로는 아빠도 나를 잘 챙기지는 않았다고 함. 아, 막연히 밉던 엄마에 대해서도 이해가 됐다. 나도 더 제대로 슬퍼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상담이 끝난 당시에는 영문을 모르니 괜한 원망이 넘쳤고, 사람이 없는 내 주변의 관계도를 본 게 너무나 외로워서 슬픔이 넘쳐 흘렀다. 집단 상담을 아주 손꼽아 기다릴만큼.

 

 

4월 9일 목요일 집단상담

2주 만에 집단원들과의 안전한 만남

목요일이 되어 2주 만에 재개한 집단상담은 코로나로 인한 자가격리자 발생 등의 이유로 평소보다 소규모의 모임이 진행됐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한 명씩 돌아가며 오늘 어떤 기분으로 모임에 왔는지를 나누면서 바로바로 감정과 상황을 짚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집단에 가는 길에 '아, 울고 싶다. 너무 울고 싶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도 맘껏 하고 많이 위로 받고 울고 와야지' 하고 다짐했었지만 내 차례가 와서 말을 꺼내놓기 무섭게 그 무겁던 감정이 쏙 들어가버려서 울먹울먹 하며 겨우 말을 마쳤다. 집단원들이 내 이야기에 집중을 잘 못했다고 말하면서 나를 비춰주는 시간을 가졌는데, 하나같이 내 말소리가 안으로 먹어들어가고 내용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고, 자신이 없어보였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정확히 분석하고 비교적 또렷이 이야기했었는데 내 이야기를 하니 유독 들리지가 않는다고. 그 말을 듣고나자 스스로도 내가 어땠는지 보였다. 남에게 가 닿을 자신이 없으니 자꾸 안으로 웅얼웅얼 숨어버리는 모습이. 제대로 내 존재에 대한 인정을 받고 자라지 않았으니 남의 눈치를 보거나, 남의 욕구를 파악하거나, 남의 생각을 듣는 것은 익숙하게 잘 하지만 내 얘기는 정확한 근거자료가 없이는 밖으로 내보내지를 못하는 거더라. 가장 밖으로 드러나지만 가장 숨기고 싶었던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춰지자 창피하기도 하고, 그렇게 속마음 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내가 안쓰럽기도 했다.

 

그렇게 울고 싶기만 했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결국 나는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못했다. 심지어 휴지 미리 뽑아놓고 손에 쥐고 있었는데. 마지막 마무리 멘트를 하면서 '다음 시간에는 꼭 울 거예요!' 하고 끝냈다. 뭐라 말을 해주지는 않아도 같이 웃어주는 집단원들이 나한테 어떻게 공감하고 있는지 느껴져서 아주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4월 11일 토요일 집단상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우는 날!

토요일 집단에서도 돌아가면서 프로그램을 시작했던 것 같은데.. 가장 최근 상담인데 잘 기억이 안 난다. 드디어 울었다는 것 빼고는. 집단원들 이야기가 한참을 도는 동안 내 감정은 완전히 올라왔다가 조금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내 차례가 와야 말하고 울어도 될 것 같아서 차례가 되자마자 말했다. '저는 그냥 너무 울고 싶어요. 지난 상담 끝나고 지금까지 계속 어디서도 편하게 울지 못해서 꾹꾹 눌러 담았어요. 그냥. 계속 울고 싶어요'. 집단원들 알아서 이야기 나눌테니 오늘 그럼 울고 싶은 만큼 실컷 울라고 하셨는데 그 때부터 무슨 수도꼭지가 터진 것마냥 줄줄줄 눈물이 났다. 성인이 되고 나서 이렇게 여러명이 있는 자리에서 울어본 적이 없다.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아서 생각보다 괜찮았다. 아주 괜찮았다. 마음 속에 한 뭉텅이 무거운 느낌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조금 개운한 느낌이 들도록 울었다. 이제 조금 걷힌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코 끝에 묻은 먼지 정도.

 

개인상담 시간에도 정말 실컷 울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때는 하나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너무 서럽고 너무 아팠고. 선생님은 내가 울 때마다 왜 이렇게 울지를 못하냐고 하시는데 월요일에도 그 얘기를 또 하셨다. 내가 못 우니까 본인이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상담 벌써 3개월차에 접어들었지만 나는 아직도 잘 우는 방법이 뭔지 모르겠다. 선생님 앞이거나 남자친구 앞이나 돼야 엉엉 소리라도 내고 우는거지 그것보다 더 울 수가 있는 건가. 성인 중에 그 방법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궁금하다. 우리는 다들 울어도 될 때 '울면 안된다'고 나를 다그치고 있는 것 같은데.

 

힘들 땐 울어도 되는 거였다.

힘들 땐 울어야 되는 거였다.

 

열심히 울고, 열심히 슬퍼하고, 열심히 화내고, 열심히 우울하고

열심히 기뻐하고, 열심히 행복해 하고, 열심히 사랑하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지.

 

이 글을 보는 모두가 진짜 마음을 나누고, 진짜 행복을 느끼면 좋겠다.

상담은 충분히 그런 도구로써의 힘이 있다는걸 꼭 알아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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