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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각] 문화예술 지원사업, 예술인, 생활예술, 포스트 코로나 이게 다 뭔가

by 홀로Hollo 2020. 4. 23.

예술인의 생계와 처지, 지원 사업, ‘예술인의 자립이 가능한가?’, 생활예술과 예술인에 대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기만 하고 있었는데 오늘 참가한 릴레이포럼에서 조금 정리가 된 것 같다. 원래 나는 굉장히 공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원 받는 예술인들이 자립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보조금은 보조금일 뿐 예술인 생계의 대책이 될 수 없으니 보조금 수혜를 받은 예술인들은 자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다시 봐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모순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국가에서 예술 산업에 보조금 예산을 편성한 것은 예술이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고 그 목적을 국가가 직접 달성하기 어려우니 현장에 활동하는 예술인들이 이 돈으로 국가 대신 공익을 이루도록 도와 달라는 의미다.

 

여기서 공공의 이익은 뭘까. ‘국민들의 정서적 안정, 예술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이다. 이 문장만 살펴봐도 예술인의 활동에 돈을 보조해주는 사업이지만 예술은 없고 국민만 있다. 예술이 정책의 도구가 되어있다. 예술은 예술로 인정받을 때 사회적 확산 효과를 낸다. 예술이 뭔지 국민(대중)은 귀신같이 안다. 어떤 음악을 들었을 때, 그림을 봤을 때, 글을 읽었을 때, 영상을 봤을 때 예술가의 지난한 생각과 고민과 철학이 녹아 있는 그 작품에 사람들은 동화되어 감정을 느끼고 를 탐색한다. 그렇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게 예술이다. 국민의 정서적 안정과 삶의 질 향상은 궁극적으로는 그런 예술을 통해 이뤄지는 거고, 그런 예술을 감상할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힘을 길러주기 위해 존재하게 된 게 생활예술 사업, 동호회 지원인 것이다.

 

예술을 고급화 하거나 우러러보자는 의미가 아니라 예술을 예술인 채로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두가 문화적인 생활을 하고 예술과 친숙해지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생활예술과 생활문화에 관련된 사업들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예술과 분명 다른 지점이 있다. 그런 사업들은 예술을 감상할 힘을 기르기 위해, 경험해보지 않아서 몰랐던 내 안의 예술가가 될 기질을 발견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위해 존재한다. 예술로 가는 길을 터주는 것이다. 생활예술이 활성화되고, 비 전업 예술인이 많아지고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더라도 예술은 예술로 존재하기 때문에 영향을 미친다.

 

오늘 참가했던 릴레이포럼에서 예술인들의 인상적인 말들이 있었다.

 

문화 예술은 시장 논리만으로는 존재하기 어려운 속성이 있다는 말이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기 시작하고 샘물을 발견하기 시작하면 우물을 파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사실 문화 예술가들은 목이 타들어가도 오아시스를 꿈꾸며 계속 걷는 사람이 아닌가?”

예술인도 행복해야만 하는 시민임을 잊지 말아야 하며

기본소득 지원하여 전문예술인들이 창작에만 몰입 몰두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면 양질의 예술 활동으로 예술인과 시민과 접점은 이루어질 것이다.”

 

전문가들이 정책을 꾸릴 때 자문하면서 이렇게 예술인이 소외되는 결과를 예상하지는 않았을 거다. 이상적인 이론의 구체적인 실행을 꿈꾸었겠지. 정책 수립 이후 실행은 각 부처에 소속된 공무원의 몫이 된다. 지금까지 경험한바 어떤 공무원은 전문가의 의도와 이 정책의 파급 효과를 고려하며 열심히 정책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문체부에서 기초문화재단 이하 각종 문화예술 단체와 예술인까지)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노력했겠지만 다른 많은 공무원은 법이 만들어졌고, ‘하라니까 해야지. 근데 뭘 하나? 저기서 한 게 성과가 좋던데?’라는 접근으로 일을 했을 거다. 머리에서 좋게 시작했어도 팔에서 흐트러졌거나 정강이 부근에서 왜곡됐거나 아무튼 발끝에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물론 발끝에서는 중간에서 어떻게 왜곡되던 머리가 하고자하는 방향을 따르려고 하지만 상위 최상위 기관의 결재를 받아야 일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쉬운 건 아니다. 이래서든 저래서든 결과적으로 보자면 지금까지는 예술인을 정책의 도구로만 봤던 것은 분명하다.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원 받는 예술인들이 자립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하고, 보조금은 보조금일 뿐 예술인 생계의 대책이 될 수 없으니 보조금 수혜를 받은 예술인들은 자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생각은 오늘 포럼을 통해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변하게 된 것 같다. ‘예술 활동이 공공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예술 산업을 확장하기 원한다면 현행의 보조금 지원 형태가 아니라 예술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지원으로 변화해야 한다.’. 행정은 행정이 해야 하는 거고, 예술인은 예술을 하면 그 뿐이다. 예술인이 행복한 국민이 되고, 다른 시민들에게 행복을 나눠주는 사회를 꿈꿔본다.

 

포스트 코로나가 중요한 것은 그간 현장에서 아무리 우겨도 상위법상 할 수 없었던 기본소득 지원이나 정산과정 축소 또는 삭제라는 시도들에 대해 하니까 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행정은 이게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더 확인하게 될 것이고, 이걸 기회 삼아 예술인들은 한 단계 질적 성장을 하게 된다면 좋겠다. 그러면 아마 지금껏 서로 물고 뜯으며 해결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각보다 쉽게, 생각보다 의미 있게 풀려나갈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낯설고 생소하고 나와는 영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것 같던 용어가 이제 점점 피부에 와 닿기 시작하고 있다.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면서 이제는 공적인 대안을 찾는 역할의 끄트머리에라도 자리하게 됐으니 예민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때가 되었다. 나는 공공과 예술인 사이 그 어디쯤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상상하고 또 좋은 연결 고리가 되고 싶다.

 

 

*위 내용은 한 지역에서 일하면서 8년 정도 민간에서 공공까지, 공연자부터 예술강사, 스태프, 기획과 행정까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역할을 겉핥기 해 본 문화예술종사자 1인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소속과도 지금껏 일해왔던 어디와도 상관 없이 오롯이 제 안에서 고민하고 결론을 내렸다가 또 뒤집기도 하는 이슈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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